1. 환상 교향곡 작품 14 (제1악장 꿈-정열) 2. 환상 교향곡 작품 14 (제2악장 무도회) 3. 환상 교향곡 작품 14 (제3악장 들의 풍경) 4. 환상 교향곡 작품 14 (제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5. 환상 교향곡 작품 14 (제5악장 마녀들의 밤 향연에 대한 꿈) 6.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서정적 장면) 7.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명상)
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 기념 특별 발매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외사이먼 래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Simon Rattle, Berliner Philharmoniker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의 신명반 탄생!
세계 최고의 악단과 클래식계의 황제의 연주로, 꿈꾸는 듯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정열이 넘치는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클래식계의 거장 - 21세기형 新 마에스트로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이끌어온 세계 최강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사이먼 래틀 평전. 그의 인생 역정을 다룬 음악 서적이지만 동시에 한 음악인의 삶과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혁가로서 21세기 새로운 마에스트로의 반열에 오른 거장 사이먼 래틀의 모든 것을 담았다. 이 책의 저자인 니콜라스 케니언 경은 세계 3대 복합공연장으로 꼽히는 런던 바비칸 센터를 이끌고 있는 음악 행정계의 수장이자 영국 최고의 음악 칼럼니스트이다. 그가 30년 가까이 사이먼 래틀의 행보를 지켜보며 꼼꼼하게 기록한 자료를 비롯하여 각종 외부 언론 기사 및 인터뷰 등을 집대성한 유일무이한 저서이다.
카라얀에게 대들었던 지휘자, 카라얀의 후계자가 되다 (두 번째 간주곡 참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이끌어온 세계 최강 악단이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카리스마로 베를린 필을 영구 집권했던 카라얀과 래틀이 빚어낸 일화는 아주 흥미롭다. 카라얀이 베를린에서 브람스 교향곡을 녹음하던 당시, 베를린 필하모니 홀의 음악 감독실에서 만난 둘은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 뒤 카라얀이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빈 필하모닉과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래틀은 딱 잘라 거절했다. 자신은 옛 음악을 옛 악기와 연주 방식으로 접근하는 시대 악기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영국 글라인드본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옛 악기로 지휘하겠다고 답변한 것이다. 사실상 세계 최고의 음악 황제 앞에서 "당신의 연주 스타일은 철 지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카라얀의 한 측근은 "시대 악기로 연주하다니 완전히 정신 나갔다"고 비난했지만, 시대 악기 연주는 그 뒤 새로운 음악계의 흐름으로 자리잡았고 20여 년이 지난 뒤 카라얀의 자리는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거쳐 사이먼 래틀의 몫이 됐다.
<비틀스>와 함께 리버풀이 낳은 최고의 문화 상품 (3장 참조) 1955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난 사이먼 래틀은 재즈에 심취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두 살 때부터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쥐고 리듬을 느끼면서 쳤다. 대중 앞에서 그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도 타악기였다. 또 어릴 적부터 음악광이었던 래틀은 특히 20세기 음악에 흥미를 보였다. 버르토크, 쇤베르크, 말러, 쇼스타코비치 등을 즐겨 들었으며 이런 광범위한 현대 음악들은 훗날 래틀의 장기가 됐다. 15세 때인 1970년에는 한 자선 음악회에서 리버풀 신포니에타의 지휘봉을 잡으며 '신동'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8년간이나 머물며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리다 (5장과 8장 참조) 불과 25세의 청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1980년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CBSO)의 새 상임 지휘자로 임명됐을 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하지만 취임 이후, 굵직한 시리즈 공연을 기획하고, 폭넓은 현대 음악을 과감하게 수용했으며 동시에 미국o유럽 투어와 현대 음악 그룹 창단, 문화예술위원회 보조금 인상, 새로운 심포니 홀 건립 등을 통해 오케스트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밀레니엄을 향해' 등 다양한 문화 축제를 주도하면서 버밍엄 예술계를 하나로 묶어 지역 문화 개발을 주도한 것도 커다란 공으로 꼽힌다. 이처럼 래틀의 과감한 개혁으로 버밍엄은 지역 악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런던의 교향악단과 실력을 겨룰 정도로 세계 정상급 악단으로 성장했다. 자신의 경력을 위해 이곳저곳의 악단을 기웃거리는 대신, 18년간 한 악단에 매진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고음악과 현대 음악, 양날개로 날다 (서문, 1장, 두 번째 간주곡 참조) 래틀은 베를린 필 데뷔 무대 이후에도 옛 음악을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 기법으로 연주하는 '시대 악기' 단체인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작업하면서 고음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보통 다른 지휘자들이 베토벤, 브람스, 말러, 브루크너 등 이른바 독일 정통 교향악에 머물고 있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동시에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의 단원들로 구성된 '버밍엄 현대 음악 그룹(BCMG)'을 창단하며 현대 음악에 애정을 쏟았다. 고음악과 현대 음악이라는 양날개를 펼치면서 자기 영역을 끝없이 확장한 것이다.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혁가 (1장, 2장 참조) 사이먼 래틀은 1999년 단원 투표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을 누르고 21세기 베를린 필을 이끌어갈 상임 지휘자로 선출됐다. 사실상 '세계 음악계의 황제'에 즉위하게 된 셈이었지만 래틀은 정작 3년간 계약 사인을 미뤘다. 취임 이전부터 오케스트라의 구조 개혁과 단원들의 봉급 인상, 새 행정 감독 임명과 정부 지원, 새로운 재단 출범 등 많은 문제들을 직접 부딪쳤다. 결국 이 모든 문제가 풀린 다음에야 2002년 9월 계약서에 사인하고 취임하는 두둑한 배짱을 보였다. 2012년까지 10년 임기로 베를린 필을 맡았으며 올해 단원 중간 신임 투표도 통과하면서 '장기 집권'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취임 이후에도 어린이 음악 교육을 강화하고 멀티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낡고 무겁고 권위주의적이었던 베를린 필에 화려한 색채감을 부여하고 있다. 토스카니니나 카라얀 시절처럼 지휘자가 일방적으로 단원들에게 명령하고 전제 군주나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상의하며 음악적 방향을 함께 결정하는 '민주적 지휘자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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